돈을 버는 일과 어른의 의미 -주희의 답
허유선 저서 < 인생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철학할 것>에서 발췌
돈을 버는 일과 어른의 의미
부모에서 독립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성인이 돼도 부모의 원조를 받으며 사는 캥거루 족이 늘고 있다. 취업,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첫 번째 잠금 해제
경제적 독립, 생계를 위한 벌이 자체도 인간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꼭 추구해야 할 절대적 근본적 가치는 아니다.
문제는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삶의 가치 간 충돌 혹은 평가다.
비슷한 조건의 남과 나의 현재에 대한 비교, 지금의 과정과 이후 결과의 불명확함, 부모에 대한 애정, 미안함, 자신에 대한 자타의 평가 등 다양한 가치 평가가 얽혀 있다.
사람이 갖는 압박감, 돈 벌이 걱정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 평가이다.
나의 길에 대한 변명이 있음에도 '난 다른 사람만큼의 한 사람 몫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한다. 그렇지 않은 거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다.
그 한 사람 몫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는 생계 유지를 위한 경제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른 유예 중인가?
한 사람 몫을 다하는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
유학자 주희는 유학 경서인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 덕을 쌓은 사람이 대인이라고 말한다.
유학은 본래 자신의 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며 사는 삶을 강조한다. 자아실현이다.
결과적으로 유학에서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란 자신을 진정으로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다. 그렇지 않은 또는 못한 사람은 전부 소인이다.
'어른답게'의 필수조건, 돈이 되지 않는 노동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역할을 모두 포함한 게 '나'이다.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는 점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사회는 각 개인의 자기 실현과 관계 형성을 통해 구성된다.
대인다운, 어른다운 관계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 있는가?
경제적 독립을 해야겠다고 느끼는 건 더 이상 돌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관계가 바뀌었기에 내 역할도 바뀌었다.
돈을 벌 수 없는 노동, 전체 사회의 뿌리가 되는 일을 우리는 이미 하고 있다. 여러 관계 속의 나로 살며 다시 관계를 돌보고, 사회 안의 무수한 관계를 만드는 일.
현재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하나만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을 회피한다거나, 한 사람 몫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길 위의 우리, 독립보다 중요한 것
지금 내가 속한 이 과정이 언젠가는 내 힘으로 먹고 살기 위한 과정일까?
삶 전체로 보면 때로는 몸부림치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초조해하기도 하면서 자기실현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 독립은 그 와중에 요청되는 것 중 하나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의 길이 완성되거나, 날 진정 위하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거꾸로 사람다운 삶을 사는 일, 관계를 돌보는 일이 어렵기에 경제적 독립의 미션을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 관계를 이어가고 자신을 염려하는 일보다 돈 버는 일이 더 쉽지 않을까? 이러면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제적 독립, 좋은 관계 등을 위한 가장 밑바탕은 나 자신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되고 성실하게 일이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독립적 어른이 되는 일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어른은 관계를 고려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려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사람답게 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우린 완성형 인간이 아니라 어른되려고 애쓰는 미완성 인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립보다는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