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발췌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달

책속의지혜 2017. 12. 8. 18:14

줄서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수년동안 시장에 관한 신념과 규제완화로 특징짓는 시장지상주의였다. 시장이 공익을 달성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신념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 영국의 경제정책의 주된 기조였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시장지상주의는 막을 내렸다. 시장이 과연 위험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능력을 가졌는지 회의적이었다. 시장이 도덕에서 분리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시장과 도덕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지상주의의 핵심에 담긴 도덕적 결함은 탐욕이고 이 때문에 무책임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에 대한 해결책은 탐욕을 억제하고 은행가와 월가의 중역들에게 더욱 품위있고 책임감있게 행동하라고 촉구하고, 합리적인 규제안을 마련해 유사한 위기의 재발 예방이다. 금융위기 발생에 탐욕이 큰 역할을 했지만 더 큰 원이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몇십년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탐욕의 증가는 아니었다.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사회에서 행사하는 역할에 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시장의 본분 유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며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돈으로 사서는 안되는 게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으로 시장과 시장 지향적 사고가 확산하는 현상은 현대에 발달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의 하나다.

 

선착순으로 입장권을 파는 인기있는 연극이 있다. 돈 지불 조건으로 사람을 고용해 대리로 줄을 세우거나 암표를 파는 행위는 잘못된 것일까?

 

줄서기에 관해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존중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에 대한 주장이다.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의 입장이다. 매춘이나 장기매매금지법 반대와 같은 이유로 암표 매매 금지법을 반대한다. 성인이 상호 동의에 따라 내린 선택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는다.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는 공리주의자 입장이다. 돈을 지불한 사람과 돈을 받고 대리로 줄을 선 사람 사이에 거래가 성립했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다.

시장 거래의 결과로 구매자와 판매자는 모두 행복해지고 효용이 증가함은 바로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장이다. 시장은 사람들이 상호 유리한 방향으로 거래함을 허용함으로써, 재화에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사람에게 그 재화를 할당한다. 그 기준은 얼마나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로 측정한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주장이 맞는다면, 줄서기의 본질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암표상과 대리 줄서기 회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가격이 낮게 책정된 재화를 가장 많은 댓가를 지불하려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만들어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킨 공로로 칭찬해야 마땅하다.

 

 

2, 줄서기의 도덕적 측면의 주장을 살펴보자.

암표 거래는 표값으로 10만원을 지불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불공정한 행위가 된다. 암표가격을 지불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

 

우리의 목적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유시장이 줄서기보다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재화에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게 꼭 해당 재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가격에는 자발적으로 지불하려는 마음만큼이나 지불할 수 있는 능력도 반영된다. 가장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도 입장권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최고 가격을 내고 입장권을 손에 넣은 사람이라도 그 경험의 가치를 전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

 

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사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설악산, 지리산 등 유명 국립공원의 주말 산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예약시작한지 몇분 지나지 않아 예약 완료된다. 산장 예약에 암표 거래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며, 국립공원을 감상하고 사용하는 권리는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고파는 재화로 다루는 행위는 그것을 향해 경의를 표현하는 태도가 아니다. 신성한 재화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바꾸는 행위는 그 가치를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줄서기를 비롯해 재화를 분배하는 기타 비시장적 방식이 시장논리로 대체되는 경향은 현대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현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