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담비의 수술
"이대로 두면 한 달 정도 살고, 수술하면 건강한 애 기준으로 반반입니다."
수의사가 우리 집 강아지 담비를 보고 검사 전에 병을 예견해 한 말이다. 담비는 말티즈 소형견이고 14살이다.
망설일 필요 없이 결론은 금세 났다. 10%의 가능성이라도 수술은 해야 한다.
최근 일주일 동안 생리의 양이 너무 많았다.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주에 잦아들지 않으면 다음 주에 동물병원에 데려갈 작정이었다. 아내가 외출하며 이상하다고 빨리 병원에 데려 가보라고 했다. 이런 건 여자의 촉이 나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수의사는 보자마자 증상이 생리현상처럼 나타났지만 암처럼 말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CT검사 결과 자궁 축농증이란 병이었다. 수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사전 검사를 했다. 수술의 측도인 간 , 빈혈 수치 등은 허용 범위였기에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시간을 다투는 병이기에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온몸으로 균이 퍼지고 패혈증으로 죽는다고 했다.
수술 위험은 더 있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98살인 고령이고, 심장병을 앓고 있기에 성공 확률은 더 내려갔다.
심장병 발견은 담비 기침으로 시작됐다. 어느 날 사레들린 듯이 담비가 켁켁거렸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소리였다.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청진기로 청진을 하더니 심장에서 피가 역류한다고 했다. 그리곤 이해할 수 없게 이틀 치 감기약만을 처방 했다. 낫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수의사는 왜 검사를 해보자고 하지 않았을까? 아마 나도 심장병이면 큰일이라 지레 겁먹고 무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병원 대기실에 푸들을 안은 50대 여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데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였다. 아픈 애기를 안은 근심 어린 어머니 모습 꼭 그대로였다.
영국에 사는 아들네를 방문해 손자를 유모차에 싣고 공원 산책을 갔는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섭섭했다고 한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 데리고 산책을 갔더니 관심을 보이며 어떤 종인지 나이며 이름 등을 물어봤다고 한다.
이 할머니 혀를 끌끌 차며 "영국은 사람 살만한 데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8년 전 담비 엄마견인 은비가 눈 감은 순간이 떠올랐다. 마지막 이틀 동안 심하게 켁켁거렸었다. 닭을 삶아 작은 뼈가 섞인 부분을 줬는데 맛있게 먹었었다. 그 후에 사레들린 듯이 행동하니 뼈가 목에 걸린 줄 알았다.
하필 주말이라 월요일까지 기다린 게 화근이었다. 심장병 증세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있었지만 호들갑을 떨며 강아지를 응급실 데리고 가진 못했다.
한번 야간 동물병원에 간 적은 있다. 시골 고향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은비를 보니 뭔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얼굴에 쓰여 있었다. 배 쪽을 보니 진드기가 소름 끼칠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다. 풀밭에서 신나게 뛰며 놀았는데 그때 붙은 듯했다.
야간에 진료를 보는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털을 밀고 소독약물에 담가 일일이 손으로 진드기를 잡았다고 했다.
담비의 기침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른 전문 병원을 찾아봤다.. 마침 근처에 심장병 전문 동물병원이 있어 갔다. CT로 확인해 보자고 했다. 심장 한쪽이 비대칭적으로 비대했다. 심장판막이 작아 수술은 불가능하지만 약물치료로도 90% 정도까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하혈 전에 담비가 가끔씩 하울링 howling을 한다고 아내가 말했다. 여태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이상하다고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었다.
내가 없을 때 그랬다니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랬나 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내가 있을 땐 전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TV에서 주인을 애타게 찾으며 하울링하는 개 모습만 보았기에 그 생각에만 미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은 못하지만 몸이 안 좋다는 신호로 본능적인 행동인 울부짖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통증을 느끼니 이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소리를 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장병 전문 수의사에게도 좀 섭섭한 면이 있다. 전에 배가 빵빵해 CT를 찍었었는데 그 원인이 등뼈 협착이란 진단만 했었다. 등뼈 협착이 눈에 확 띄니 원인이 이거구나 하고 다른 부분을 볼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다.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면 이상 증세를 미리 알 수 있었을 법하다.
우리가 타인을 만나면 그에 대한 해석도 상당히 자의적이지 않을까?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에서 우리가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진실일 것이다'라는 가정을 깨부숴야한다고 한다.
그는 타인을 파악하려 할 때 취해야 할 자세를 알려준다. 다음은 책 <타인의 해석>에 쓴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감수사 내용을 정리해 옮긴다.
"첫째, 낯선 이에게 말 거는 방법을 모르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데 매우 서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쉽게 속는 사람은 모르면서 안다고 거짓말하는 자, 즉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기억은 의도와 소망에 부합되게 각색돼 무수히 많은 사실을 놓치기 때문이다."
서투른 해석은 판단과 의사결정에서의 사후확증편향 연구를 한 바루크 파쇼크의 위 말과 맥락이 닿아 있다.
둘째, 낯선 이를 보고 곧바로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의 행동거지에 대한 나의 가정이나 추론은 그 사람의 품성이나 가치에 기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현재의 느낌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그토록 긴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놀라울 정도로 간단히 끝내려 한다."라고 인지심리학자 대니엘 카너먼은 말한다.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타고난 기질, 능력, 성품 그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건 상황이다."라고 인지심리학자 아트 마크먼은 말한다."
강아지에 대한 나의 해석은 이방인과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수술 부위가 아픈지 바라보는 눈에 애절함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담비가 수술 후유증을 잘 극복하고 다시 건강해지길 바란다.
'내가 쓴 창작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영과 놀이 (2) | 2023.03.12 |
---|---|
토정비결과 바넘효과 (0) | 2023.03.10 |
영남 알프스 가을 여행 (1) | 2023.02.19 |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철인3종 하프대회 완주하다--고성아이언맨70.3 (0) | 2022.06.27 |
제주도 여행과 산신령 여인 (0) | 2022.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