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발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Nicholas G. Carr

책속의지혜 2017. 12. 8. 18:31

Nicholas G. Carr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이자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글로벌 CEO 132인에 뽑히기도 한 니콜라스 카는 IT 비즈니스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3년에 발표한 글 “IT Doesn’t Matter”는 ‘50메가톤급 스마트폭탄’의 파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CEO 스콧 맥닐리, MS의 스티브 발머, 휴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인텔의 크레이그 바렛 등이 가세하면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글을 「애틀랜틱」(The Atlantic)에 발표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책소개: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과 아이패드가 우리의 사고능력을 빼앗고 있다? IT 기술, 최근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스마트 기기와 SNS 서비스로 사람들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었다. 손 안의 '스마트'한 휴대 기기로 그 자리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단 몇 분 만에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시대가 열렸다. 지식의 깊이보다는 효율성과 속도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정보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범람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더 스마트해졌을까? 오히려 많은 이들이 집중력 저하와 건망증을 호소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기 힘들어졌다고 한탄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원초적 진단을 제공한다. 더 이상 정보를 인간의 머릿속에 저장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지는 정보를 따라 문제의식 없이 흘러 다니는 우리의 사고를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첨단 기술의 달콤함에 빠진 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고찰해 보여준다.


인문, 사회, 경제, 문화 전방위를 넘나드는 날카로운 식견을 보여주며 ‘우리가 인터넷을 통한 맥락 없는 정보만 추구하면서 사고하는 방식은 아주 경박해졌으며 이에 걸맞게 뇌구조까지 물리적으로 변화했다’는 주장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이기로 받아들인 인터넷과 스마트기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영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슨 수로 우리의 지식과 사고능력을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장 컴퓨터와 나
인터넷 사이트와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의존하게 되면서 나의 습관과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는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이 바뀐 듯했고, 나는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년에 들어서면서 머리가 무뎌져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뇌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표류하는 정도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도 전자 우편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검색하고 싶어 했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내게 살과 피와 같은 워드프로세스가 됐고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 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할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


2장 살아있는 통로
지난 한 세기 동안 뇌의 물리적 작동방식에 대한 인류의 지식확대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있는 오래된 가정이 하나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대부분의 생물학자들과 신경학자들은 성인의 뇌구조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우리의 뉴런은 뇌가 아직 말랑말랑할 때인 어린 시절에는 회로와 연결되지만 이 회로는 성인기에 어떤 틀에 고정돼 버린다는 것이다.


성인의 뇌가 변하지 않는 물리적 조직이라는 생각은 뇌를 기계적 장치로 보는 산업혁명시기에 탄생해 지지를 받았다. 신경조직은 증기기관이나 전기 동력계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몸 전체의 기능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도록 각기 정해진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들은 겉모양이나 기능면에서 변할 수 없다. 변할 경우 즉시 걷잡을 수 없는 기계고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에 대한 비유는 20세기 중반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리는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할 즈음에는 더욱 확대, 강화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우리 뇌의 회로와 심지어 행동까지도 컴퓨터 칩의 실리콘 기판에 새겨진 작은 회로들처럼 내장된 것으로 빗대어 말하기 시작했다.


뇌의 가소성
   신경과학 전공교수 제임스 올즈의 말처럼 성인의 뇌는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잘 변한다. 뇌가 잘 변하는 정도를 뜻하는 가소성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해 뇌는 그간 해 왔던 방식에  익숙해지지만 이 가소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뉴런은 언제나 낡은 것들과 연결을 끊고 새로운 것을 취하며, 항상 새로운 신경 세포가 만들어진다.


뉴런 사이의 미세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극도로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신경 통로에 경험을 입력하고 또 기록하는 다양한 화학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간에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감각을 경험할 때마다 뇌속에 있는 일련의 뉴런들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뉴런들이 가까이 있을 경우에는 아미노산 글루타민산염과 같은 시냅스상의 신경전달물질을 교환하면서 결합한다. 같은 경험이 반복될 경우 뉴런 사이 시냅스 간 결합은 보다 농축된 신경전달물질의 배출과 같은 생리학적 변화나, 기존 수상돌기와 축색돌기에 존재하는 새로운 시냅스 끝부분에 새로운 뉴런의 생성을 이끌어내는 등의 해부학적 변화를 통해 더욱 강력해지고 많아진다.



시냅스들의 연결은 또다시 생리학적, 해부학적 변경의 결과, 특정 경험에 반응하면서 약화된다.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내용은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포간 연결 부위에 담겨 있다. 연결된 뉴런의 끈은 우리 사고에 있어 진정 살아 있는 통로를 형성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헤브의 법칙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정의로 신경가소성이 보여주는 중요한 역동성을 정리한다. “동시에 활성화하는 신경세포는 한 다발로 묶힌다.”


뇌는 우리가 한때 생각한 것처럼 기계같은 형태가 아니다. 여러 부위가 각기 다른 정신적 기능과 연결돼 있지만 세포구성 조직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엄격하게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세포는 유연하다. 경험과 환경, 필요에 의해 변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큰 변화들은 신경조직의 손상 결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실명을 할 경우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 즉, 시각 피질이 그냥 멈추는 건 아니다. 이 부분은 즉각 청각 처리를 위한 회로로 채워진다. 또한 이 사람이 점자를 배울 경우 시각 피질은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임무를 띠게 된다.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
하버드 의과대학 파스쿠알 레온은 “가소성은 일생을 거쳐 신경조직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경험과 행동에 반응해 끊임없이 변하고 개별감각의 입력, 동작, 연관성, 보상 신호, 행동 계획, 인식의 변화 등에 따라 회로를 재조직한다. 파스쿠알 레온은 신경가소성은 진화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며, 이 같은 특성은 신경 시스템이 “타고난 게놈의 한계를 벗어나 환경의 압력, 생리적 변화, 경험 등에 적응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사고, 인식, 행동 방식은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님을 알았다. 이는 우리의 유년 시절 경험을 통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삶의 방식에 따라 유전자를 바꾸는데, 니체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통해 변화한다고 인식했다. 경두개자기자극이라는 기술을 통해 파스쿠알 레온은 실험 이전, 도중, 이후에 모든 참가자의 뇌 활동ㅇ을 기록했다. 그는 피아노 치는 상상만 했던 사람들도 실제 건반을 친 사람들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뇌 변화를 보인다는 걸 알아냈다.


신경가소성이 자유로운 사고와 자우의지의 허점이라 할 수 있는 유전자 결정론으로부터 벗어날 여지를 주기는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 행동에 또 다른 결정론을 안겨준다. 뇌의 특정 회로가 육체적 또는 정신적 행동의 반복을 통해 강해질수록 회로는 해당 행동을 습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도이지가 관찰한 신경가소성의 역설은 이 가소성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정신적 유연성이 결국은 우리를 ‘고착화된 행동’ 속에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도이지는 일단 우리가 뇌속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낼 경우 오랫동안 이 회로를 활동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뇌가 그 기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행동은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되는 반면 사용되지 않는 회로들은 가지치기당하는 식이다.
다시 말하면 유연하다는 건 곧 탄력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신경회로가 고무줄처럼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 신경들은 변화된 상태를 유지하며, 새로운 형태가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든다. 파스쿠알 레온은 “유연한 변화가 꼭 주어진 문제에 대한 행동적인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가소성은 발전과 학습의 구조임은 물론이고 병적 증상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도이지는 “정신적인 기술 연마를 멈출 경우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이 기술을 담당하는 뇌지도 내 공간은 우리가 훈련하는 다른 기술에 자리를 내어준다.”고 말한다. UCLA 의대 정신과 교수 제프리 슈워츠는 이 과정을 “가장 바쁜 자의 생존”이라고 명했다.


3장 문자, 새로운 사고의 도구
시계는 우리가 중세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또 계몽주의로 나아가는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했다.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생각을 담은 1934년 작 <Technics and Civilization(과학기술과 문명)>에서 루이스 펌퍼드는 시계가 어떤 식으로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독자적인 세계가 존재함을 믿도록 도왔는지에 대해 묘사한다. 그는 “나누어진 시간의 추상적인 틀은 행동과 사고 양쪽 모두가 참고로 삼는 기준”이 되었다고 적었다. 시간을 기록하는 기계의 탄생을 끌어내고, 또 이 기기의 일상적 사용처를 정했던 실용적 관심과는 별도로 시계의 체계적인 움직임은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인간의 탄생을 도왔다.


기술은 혁명적 사고방식을 만든다.
‘지적기술’이라는 단어는 정신적 능력을 확장시키거나 또는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도구들, 즉 정보를 찾고 분류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노하우와 지식을 나누기 위해,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 우리 기억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들을 망라한다.


타자기는 지적기술이다. 주판과 계산자, 육분의와 지구본, 책과 신문, 학교와 도서관, 컴퓨터와 인터넷 등도 마찬가지다. 쟁기는 농부의 생산량에 대한 기대수준을 바꿔 놓았고 현미경은 과학자에게 정신적 탐험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연 것처럼 어떤 종류의 도구건 우리의 시각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지적기술이다. 이 기술들은 가장 친밀한 도구이자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사적, 공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지적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경우 새로운 사고의 방식을 만들어 내거나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만 국한돼 있던 사고방식을 대중에게 확산시킨다. 달리 말해, 모든 지적 기술은 지적윤리, 인간의 사고가 어떤 식으로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구현하고 있다. 지도와 시계는 비슷한 윤리를 공유하고 있다. 양쪽 다 측정과 추상적 개념, 인식과 정의하는 방식, 명백한 감각 그 너머에서 일어나는 과정 등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개념적 사고의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세상의 숨겨진 구조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지도를 개발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시계를 제조한 이들도 이 기계가 과학적 사고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것들은 기술의 부산물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심오한 영향을 준 것은 개발자의 지적윤리다. 지적윤리는 매개물이나 수단이 사용자들의 사고나 문화에 심어 놓는 메시지다.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문명의 형성에 있어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적하고 토론해 왔다. 사회학자 소스타인 배블렌이 말한 ‘기술적 결정주의’를 옹호했는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주적인 힘으로,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핵심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결정론적 시각에 대한 가장 극단적 표현은 인간은 “기계 사회의 생식기”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우리의 핵심적 역할은 더 정밀한 도구를 생산하기 위해, 즉 꿀벌이 식물을 수정시키듯이 기계를 수정시키는 것으로, 이는 기술이 스스로를 복제할 능력을 개발할 때까지 이어진다. 복제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이 스펙트럼의 끝에는 도구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기술의 힘을 과소평가했으며, 도구는 중립적 물건으로 사용자들이 인식하는 소망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도구란 인간의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며 스스로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해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이 도구주의다. 언론 비평가인 제임스 케리는 “기술은 기술이다”라고 선언하며, 이는 “소통과 우주로의 여행을 위한 수단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역사적사회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결정주의자들의 주장이 더 신뢰를 얻고 있다. 기술이 등장했을 때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수많은 부작용을 우리가 ‘결정’했다고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정치학자 랭던 위너는 ‘근대 사회에서의 경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기술은 단순히 인간 활동의 보조적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과 의미를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좀처럼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대부분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등장한 기술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르고 있다. 기술이 자율적으로 발전한다는 건 과장된 표현이다. 도구를 선택과 사용은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인구학적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발전이 항상 도구 개발자나 사용자들의 의도, 소망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발전한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때때로 도구는 우리가 명령하는 일만 수행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도구의 요구에 따라 적응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기술의 영향, 특히 지적기술이 인간의 뇌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예술품, 과학적 발견, 문서로 남겨진 표시 등 사고의 산물들을 육안으로 보지만 그 생각 자체를 보지는 못한다. 화석화 된 신체는 넘쳐나지만 화석으로 남겨진 생각은 없다.
오늘날, 결국 기술과 사고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신경가소성에 대한 최근의 발견은 지식의 핵심에 대해 더 잘 볼 수 있게 하고, 그 과정과 한계를 더 쉽게 파악하도록 했다. 기술의 사용은 어떤 신경회로는 강하게 만들고 어떤 것들은 약화시켰다. 또 특정한 정신적 특성을 강화시키며 어떤 것들은 소멸시켰다. 신경가소성은 정보가 담긴 미디어와 여타 지적 기술이 문명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생물학적으로 인류 지식 역사의 길을 찾는데 어떤 도움을 줬는지 이해하는데 있어 사라졌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신경가소성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의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 지적행위적 보호난간 사이의 도로는 넓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매분, 매일,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무엇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시냅스 내 화학물질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또 뇌를 바꿔 놓는다. 우리가 확립한 전례와 우리가 제공하는 교육, 사용하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지닌 생각의 습관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때 우리는 뇌 구조의 변경 사항들 역시 물려주는 것이다.


문자가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
지도와 시계는 자연현상을 묘사하는 새로운 은유를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언어를 바꿔 놓았다. 다른 지식 기술 들 역시 말 그대로 우리가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방식을 바꿔 놓음으로 더욱 직접적이고 근본적으로 언어를 바꿔 놓았다. 언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의식적 생각, 특히 고차원적 형태를 한 사고의 틀이기 때문에 언어를 재구성하는 지식 기술은 우리의 지적 생활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읽기와 쓰기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며, 의도적인 알파벳의 개발과 다른 많은 기술들로 인해 가능해졌다. 우리의 사고는 이 상징적인 문자를 이해 가능한 언어로 변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읽기와 쓰기는 가르침과 연습, 계획적인 뇌의 성형을 필요로 한다.


고전학자 월터 옹은 “기술은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의식에 대한 내부적 변화인데, 특히 단어에 영향을 줄 때 가장 그렇다”고 했다. 언어의 역사는 사고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2년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일단 글쓰기가 정신을 사로잡은 이후 말로 이루어지던 문화는 더 이상은 불가능한 고급문화에 대한 강력하고 아름다운 언어적 연주와 인간 가치를 생산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읽고 쓰기는 “과학뿐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과 여느 예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언어(말로 하는 연설을 포함해)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진정 필요했다”고 말한다. 글쓰기 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인간 잠재력의 보다 완벽하고 내적 실현을 위해 진정 핵심적인 것”이라고 옹은 결론 내렸다. “글쓰기는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야기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기와 이후 수세기 동안 고취된 의식은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알파벳이 가져다주는 인지적 혜택이 대중들에게 확산되기까지는 글로 쓰인 작품들의 인쇄, 제작, 유통과 관련한 또 다른 일련의 지적 기술들이 발명돼야만 했다.


4장 사고가 깊어지는 단계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초기 기록에선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오늘날 이것을 '스크립투라 콘티누아Scriptura Continua'라고 부른다.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없는 것은 언어의 기원이 말에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단어마다 끊어 발음하기 위해 멈추지 않으며, 여러 음절들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흘러나온다.


깊이 읽기의 시작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 즉 수도사, 학생, 상인, 귀족 등이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책에 대한 접근도 확대됐다. 새로운 책은 대부분 기술에 대한 것으로 여가용이나 학문적인 내용이 아닌 실용적 용도의 책이었다. 사람들은 빨리 그리고 혼자 책을 읽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독서는 공연이 아닌 개인적인 교육이나 성장의 도구가 돼 가고 있었다.


13세기 무렵 스크립투라 콘티누아는 각 지역의 언어로 쓰여진 문서뿐 아니라 라틴어로 써진 문서 대부분에서 사라졌다. 구두점 역시 보편화되면서 독자들은 더욱 편해졌다. 글쓰기는 처음으로 듣기뿐 아니라 보기 위한 것이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의 과정을 연습해야함을 의미했고 하나의 정적인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다. 인쇄된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들이 저자의 글에서 지식을 얻기 때문만이 아니라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서 동요를 일이키기 때문에 유익하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 준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고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행위지 마음을 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을 채우고 보충하는 행위였다. 독자들은 글과 생각, 내부적인 감감 흐름에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해 주변에 산재한 자극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는 깊이 읽기가 지닌 독특한 정신적 과정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 정신의 역사에서 이 “불가사의하면서도 이례적인 일”을 가능케 한 것은 책이라는 기술이다. 독자들의 뇌는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는 뇌 이상이었다. 이는 문학적인 뇌였다.(102)

책장을 넘어선 새로운 세상의 도래
구텐베르크 발명 이후 더욱 섬세해지고 까다로워진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작가들이 경쟁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명료하고 우아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언어의 영역은 급속히 확장되었다. 영어 단어는 당초 수천 개에 이르는 수준에서 책이 확산되면서 수백만 개로 늘어났다. (114)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형성하는 정신적 능력, 즉 신경 회로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책에 담긴 이야기나 주장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해 보다 사색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을 갖게 되었다. (115)


매리언 울프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재배치하는 법을 이미 배운 뇌는 새로운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인다”며,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촉진된, 점차 더 섬세해지는 지적 능력이 지적 활동의 목록에 추가되었다”고 했다.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그 고요함은 스티븐스가 이해한 대로 사고의 일부가 되었다.


인쇄기가 발전한 이후, 다른 많은 기술과 더불어 사회적인구학적 흐름도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책이 인간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유일한 요인이라 말할 수 없지만 책은 변화의 가장 중심에 있었다. 책이 지식과 통찰력을 교환하는 주된 수단이 되면서 그 지적 윤리는 문화의 기반이 됐다.

5장 가장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매체


인터넷 사용증가의 영향
집, 직장, 학교 등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미디어 혁명에 대해 우리는 질문은커녕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일도 없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디어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다. 서로 다른 기술들이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며 특별한 목적을 지닌 도구의 확산을 이끌었다.(135)


미디어에 잠식당한 미디어들
온라인 저작물들의 검색 가능성은 목차, 색인, 용어 색인과 같은 오래된 검색 보조 수단의 변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나 그 영향력은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른 검색을 가능케 한 링크 덕분에 인쇄 미디어에 비해 디지털 문서 사이를 건너뛰어 다니기가 더욱 단순해졌다. 문서에 대한 집중력은 더욱 약해지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다. 검색 또한 온라인 저작물의 분절화를 초래했다. 검색엔진은 종종 우리가 그때그때 찾는 내용과 깊이 연관 있는 문서의 일부분이나 문장의 몇몇 단어를 보여주며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이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만한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웹에서 검색할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나무조차도 보지 못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다. (138)


6장 전자책의 등장, 책의 종말?
디지털 리더기의 미래를 보여주는 킨들의 등장
작가 스티븐 존슨은 킨들로 전자책을 읽자마자 “디지털 영역으로의 책 이동은 단순히 잉크를 픽셀로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읽고 쓰고 책을 판매하는 방식을 상당 수준 바꿀 것”임을 깨달았다. 이 디지털 기기는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 다른 세상, 즉 저자의 사고 속 세계에 완전히 젖어드는 걸 잃을까봐 두려웠다. 우리는 점차 잡지와 신문을 읽는데 이용하는 방식, 즉 정신의 일부는 이곳에 두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곳에 두는 방식을 따를 거라”고 말했다.


“몇 번의 클릭과 함께 글은 예상대로 내 컴퓨터 모니터에 등장했다. 나는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이 서술 방식이 매우 뛰어난 것은 물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알아차렸다. 나는 앞뒤로 스크롤하며 키워드를 찾았고 평소보다 더 자주 커피를 가지러 들락거리고, 전자 우편을 확인하고 뉴스를 확인하고 책상 서랍의 파일을 정리하느라 독서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다 읽었고, 결국 해냈다는 데 기뻤다. 하지만 일주일 뒤 깨달은 것은 읽은 내용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157)


글쓰기 형태에 미칠 영향
읽는 방식의 변화는 독자의 새로운 습성과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저자와 출판사가 이에 적응하면서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도 가져 올 것이다. 2001년 한 젊은 일본여성이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 메시지와 같은 형식으로 이야기를 지어 웹사이트인 ‘마호노이란도(마법의 e세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휴대전화 소설’ 시리즈로 확대됐고 인기도 높았다.


젊은 독자들이 전통적인 소설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 독자가 전문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은 문장들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고 표현은 과장되어 장황한데다 이야기가 젊은이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다.

많은 이들은 소셜네트워킹 기능이 디지털 리더기와 결합하면서 독서를 팀 스포츠와 비슷한 유로 바꿔놓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전자문서를 보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가상의 메모를 교환할 것이다. 동료, 독자들의 평이나 수정이 있을 때마다 자동으로 전자책을 업데이트 해주는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책의미래연구소의 벤 버시바우는 “조만간 실시간 채팅은 물론 댓글과 공동 주석 등의 비동시성 교환을 통해 말 그대로 책 안에서의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볼 수 있고 그들과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이 의미와 정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는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는 킨들을 소개할 당시 스스로를 찬양하는 듯이 말했다. “책과 같이 매우 진화한 물건을 택해 개선하는 것은 참으로 진취적인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읽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다.” 이는 거의 확실하다. 사람들이 읽고 쓰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바뀌었고, 이 변화는 글이 인쇄된 종이에서 빠져나와 컴퓨터의 방해 기술의 생태계 속에 장착됨에 따라, 더디기는 하지만 분명 계속될 것이다.

책이 과연 다른 미디어로 대체될 것인가?


책은 신문을 극복했듯 축음기를 극복해냈다. 듣기는 읽기를 대체하지 못했다. 에디슨의 발명품은 시나 산문을 읊는 것보다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됐다. 20세기 동안 책읽기는 치명적으로 보이는 위협을 받았는데, 이 위협들이란 영화 관람, 라디오 청취, 텔레비전 시청 등이었다. 오늘날 책은 여전히 흔히 존재하고 있고 인쇄된 작품이 향후 몇 년 동안 상당한 규모로 계속 생산되고 읽힐 것이라고 믿을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제본 형태의 책이 계속 존재한다는 게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나마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긴 하겠지만 우리가 과거에 정의했던 것과 같은 가치의 책과 책읽기가 지금은 문화적 황혼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7장 곡예하는 뇌
인터넷은 텔레비전, 라디오 또는 조간신문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지속적으로 우리의 관심을 지배하고 있다. 인터넷을 하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기기에 사로잡혀있는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온라인상에서 우리는 종종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망각한다. 기기를 통해 전달되는 상징과 자극의 홍수를 처리하면서 실제 세상의 모습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이 효과 역시 극대화시킨다. 우리는 자주 사회적 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한다. 친구나 동료와 대화를 하고 개인 프로필을 작성하고 블로그 글이나 페이스북 업데이트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회적 위치는 항상 작동하고 있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 결과물인 자의식, 때로는 두려움이 이 기기에 빠져드는 강도를 증폭시킨다.


10대를 포함해 청년들은 “동료들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고, 동시에 무리에서 낙오되는데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메시지 보내기를 멈춘다면 유령 인물로 전략할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다.

인터넷 사용은 많은 모순을 수반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바로 인터넷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긴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인터넷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을 보여줌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반면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는 웹 페이지를 보고 검색할 때 이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를 나타냈다. (182)


컴퓨터와 스마트폰 검색엔진과 비슷한 여타 기기의 일상적 사용은 “뇌 세포 변형과 신경전달물질 배출을 자극해 오래된 신경 통로는 약화시키는 반면 새로운 신경 통로는 점차 강화된다”는 것이다.


전전두엽 피질의 실행기능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뇌는 훈련될 뿐 아니라 혹사당한다. 웹은 매우 현실적인 방식으로 읽기가 인지적으로 고된 활동이었던 스크립투라 콘티누아의 시대로 우리를 되돌려 놓았다. 메리언 울프는 온라인에서 무엇을 읽을 때 우리는 깊은 독서를 가능케 하는 기능을 희생시킨다고 한다. 우리는 정보의 단순한 해독기로 되돌아간다. 깊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때 형성되는, 풍요로운 정신적 연계 능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뇌가 혹사당하면 산만해진다
호주의 교육심리학자인 존 스웰러는 사고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연구를 30년간 했다. 그의 연구는 인터넷과 다른 미디어가 우리 사고의 방식과 깊이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명한다. 우리의 뇌는 두 개의 다른 기억, 즉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즉각적인 인상, 감각 그리고 생각들을 단기 기억 속에 품고 있으며 이는 불과 몇 초 동안만 지속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은 장기 기억에 저장되며, 이는 우리 뇌 속에 며칠, 몇 년 또는 평생 동안 남는다. 단기 기억의 특별한 형태는 작업 기억인데, 이는 정보를 단기 기억으로 옮겨주고 그에 따라 우리의 지식 창고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 기억은 매우 현실적인 측면에서 언제라도 우리 의식의 내용을 형성한다. 스웰러는 “우리는 작업 기억 속에 있는 건 의식하지만 그 밖의 것은 의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작업 기억이 정신의 메모지라면 장기 기억은 정신의 서류 정리 시스템과 같다. 장기 기억 속 내용은 주로 우리의 의식 밖에 존재한다. 예전에 배웠거나 경험한 무엇을 생각해내려 할 때 뇌는 이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부터 다시 작업 기억으로 옮겨야 한다. 


  뇌과학자들은 장기기억이 실상은 이해가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발견했다. 장기 기억은 사실뿐만 아니라 복잡한 개념 또는 스키마(계획이나 이론 등의 윤곽)들을 저장한다. 흩어진 정보의 조각을 지식의 패턴으로 조직함으로써 스키마는 우리 사고에 깊이와 풍부함을 제공한다. “우리는 개념과 관련된 이 같은 스키마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전문 분야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능의 깊이는 기억을 작업 기억으로부터 장기 기억으로 이동시키고, 또 이 기억을 개념적 스키마로 이어 붙이는 능력에 달려있다. 하지만  작업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가는 통로는 뇌속에 큰 병목현상을 일으킨다. 방대한 능력을 지닌  장기 기억과 달리  작업 기억이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아주 적다.


실험 결과들은 작업 기억이 한계에 도달할수록 불필요한 정보와 필요한 정보, 소음에서 신호를 구분하는 게 더 힘들어짐을 보여준다. 결국 정보에 대해 분별없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인지 과부하의 잠재적 요인은 많지만 스웰러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관련 없는 문제의 해결’과 ‘주의력 분산’이다. 이는 정보 전달 도구로서 인터넷의 핵심 특성이기도 하다.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책읽기를 하는 행위가 바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지적 활동을 할 때의 환경이다.


하이퍼텍스트와 인지 능력의 상관관계
많은 연구 결과에서 하이퍼텍스트 내에서 부가적으로 의사 결정과 시각적 처리까지 신경 써야 하는 탓에 읽는 행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이는 전통적인 선형적 형태와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들은 “하이퍼텍스트의 많은 특성들은 인지적 과부하를 낳았고 따라서 독자의 능력을 초과하는 작업 기억 능력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온라인상 습관의 영향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증연구소 소장인 조던 그래프먼은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멀티태스킹을 위해 최적화하는 게 더 나은 기능, 즉 창조성, 독창성, 생산성을 가져올까? 대답은 부정적이다”라고 그래프먼은 말한다.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창적인 시고로 도전하기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우리 뇌의 가소성을 고려할 때 온라인상의 우리 습관은 오프라인에서도 우리 시냅스의 작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건너뛰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사용되는 신경회로는 확장되고 강해지는 반면에 깊고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데 사용되는 부분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중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이들은 “관련 없는 것들을 빨아들이는 이들이며, 모든 것이 그들을 산만하게 한다”고 클리포드 나스 교수는 말했다. 온라인상에서 멀티태스킹을 할 때 우리는 “쓰레기 같은 소리에만 관심을 기울이도록 뇌를 훈련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우리의 지적인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직접 아는 지식 vs. 찾을 수 있는 지식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인터넷은 그 규모나 범위에서 전례 없는 정보의 도서관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이 축소시키고 있는 점은 첫 번째 종류의 지식이다.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우리의 사고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그 능력 말이다.


8장 ‘구글’이라는 제국
구글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보는 일종의 상품이므로 이는 산업적 효율성을 바탕으로 캐내고 처리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돼야만 하는 실용적 자원이다.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수록, 그 핵심을 더 빨리 파악할수록 사고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더욱 생산적이 된다. 데이터의 빠른 수집, 분류 그리고 전송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구글의 사업뿐 아니라 이 회사가 인터넷상에 건설하려는 인지적 효율성이 구현되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위협하는 요소다.


구글, 정보를 빠르게 스캔하게 만들다
구글의 수익은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가 더 빨리 웹 페이지를 서핑할수록, 더 많은 링크를 클릭하고 더 많은 페이지를 볼수록 구글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가 더 많은 광고를 보게 할 기회를 얻는다. 구글은 말 그대로 산만함을 업으로 삼는 기업이다.


모든 지식은 구글로 모인다
구글이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회사이긴 하지만 그 사업 전략은 생각만큼 그리 신비롭지 않다. 구글의 변화무쌍한 외형은 그 핵심 사업, 즉 온라인 광고를 팔고 유통하는 행위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 사업에 대한 수많은 보완재(함께 구입되고 소비되는 생산품과 서비스)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광고를 보며 자신들에 대한 정보도 더 많이 공개하는데, 그 결과 구글도 더 많은 돈을 긁어 모으는 식이다. 부가적 생산품과 서비스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면서 오락, 뉴스,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금융거래, 전화 등 구글의 보완재의 종류는 더 많은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구글 북서치, 책 디지털화의 전주곡
구글은 또한 '인기 구절Popular Passages'이라고 부르는,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짧은 발췌문을 강조하고, 일부 서적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하기를, 독자들이 "책을 10초 안에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워드 클라우즈word clouds'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같은 도구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그야말로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에 있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독립적인 문학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발굴 가능한 또 하나의 정보 더미라는 점 역시 명확하다. 구글이 서둘러 건립하려는 이 거대한 도서관을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도서관과 혼돈하면 안 될 것이다. 이는 짧은 발췌문만 가득한 도서관이다.p.244


효율적 정보 수집 vs. 비효율적 사색
정보를 신속히 검색하고 발견하는 일을 발전시키는 것이 결코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균형 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그리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p.247


구글, 천사의 선물인가 악마의 유혹인가?
“구글은 신도 악마도 아니며, 구글플렉스에 검은 그림자가 있다면 이는 그 장엄함에 따른 망상일 뿐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이 불안한 이유는 그들이 창조주보다 한발 더 나아가 사고할 수 있는 놀랍도록 멋진 기계를 창조하려는 소년 같은 열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 같은 열망을 가지도록 한 그들의 인간 사고에 대한 이해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259)


9장 검색과 기억
지금쯤 독자는 이 책 자체가 주제와 상반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면 적어도 나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일관성 있는 서술 방식을 유지하면서 수백 페이지의 글을 쓸 수 있었을까? … 쉽지는 않았다. … 독자적으로 일하고 매우 은둔적인 성격을 지닌 나는 연결을 끊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이 책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나는 다시 매분마다 전자 우편 알림 서비스를 받고 있고, RSS 리더기로 되돌아갔다. … 정말 환상적인 기기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기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기억의 강화는 유전학적 변이를 기반으로 한다
영감을 가져다준 사건 직후 마음속에서 증발해버리는 ‘주 기억(Primary Memory)’과 뇌가 무기한으로 저장할 수 있는 ‘보조 기억(Secondary Memory)’이 있다. 주 기억 또는 단기 기억이 보조 기억, 즉 장기 기억으로 이동하는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일은 새로운 단백질의 합성을 필요로 하나 단기 기억 저장은 그렇지 않다. 한 경험이 더 자주 반복될수록 해당 경험에 대한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된다. 반복은 굳히기 효과가 있다. 장기 기억의 형성은 생화학적인 변화뿐 아니라 해부학적인 변화도 수반한다는 것이다. 왜 기억 강화가 새로운 단백질을 필요하는지 설명해 준다는 걸 깨달았다. 단백질은 세포내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의 기억은 끊임없이 갱생한다
미주리대학교의 기억 전문가인 넬슨 코완Nelson Cowan은 "보통의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다른 점은 인간의 뇌는 더 이상 경험을 기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 법이 없으며, 인간의 뇌는 꽉 찰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토르켈 클링베르크는 "장기 기억에 저장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사실상 무한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개인적인 기억을 계속 저장해감으로써 우리의 사고는 더욱 예리해짐을 여러 증거들이 보여준다.

새로운 장기 기억을 저장할 때 우리는 정신적인 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기억을 확장할 때마다 지적 능력은 향상된다.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에 편리하고 매력적인 보조물을 제공하지만 인터넷을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280)


휴대용 계산기는 작업 기억의 부담을 완화시켜 중요한 단기 저장을 더욱 추상적인 추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웹은 이와는 다르다. 이는 고차원적 추론 능력에 쓰여야 할 자원을 다른 곳에 사용하게 할 뿐 아니라 장기 기억의 강화와 스키마의 발전을 방해하며 작업 기억에 더 많은 하중을 가한다. 강력할 뿐 아니라 매우 특화된 도구인 계산기는 기억을 보조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망각의 기술이다. (281)

인터넷이 우리를 망각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기억 강화의 핵심은 집중이다...우리가 온라인에 있을 때마다 받아들이게 되는 서로 다른 메시지의 유입은 우리의 작업 기억에만 과부하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두엽이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억의 강화 과정은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 (281, 282-283쪽)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한 인간의 사고방식은 오랫동안 그 사람의 기억의 내용과 인격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다고 알려져 왔다. 개인적인 기억은 문화를 뒷받침하는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저장돼 있는 것, 즉 사건이나 사실, 개념, 기술은 자아를 구성하는 ’특별한 개인적 특성의 표현‘ 이상이라고 적었다. 이는 또한 ’문화적 전파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 각각은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또 계획한다. 문화는 우리의 시냅스 속에서 유지된다.


기억을 외부 데이터뱅크에 저장하는 일은 단순히 자아의 깊이와 특성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이는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의 깊이와 특성 또한 위협한다.


10장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인간


도구가 가져오는 가능성과 한계
1964년 MIT공과대학 컴퓨터 과학자 조셉 와이젠바움은 글로 쓰인 언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또 다른 규칙의 집합에 따라 입력한 문장의 답변 형태를 띤 새로운 문장으로 바꿔놓는다. 컴퓨터가 만든 문장은 즉각 학생의 단말기에 나타나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와이젠바움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관심 외에 놀라운 또 다른 현상은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마치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과 대화하면서 얼마나 빨리 그리고 깊이 ‘컴퓨터에 감정적으로 빠져들게 되는가’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로 명명된 프로그램과 대화는 변형된 형태의 튜링테스트에 참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와이젠바움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엘리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엘리자가 단순하고 심지어 명확한 지시를 따르는 컴퓨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때조차도 엘리자에게 인간의 특성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튜링테스트는 기계의 사고방식에 대한 실험이었던 동시에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유명 정신의학 전문가는 엘리자가 실제 치료사들의 대안으로 활약할 수 있는 대안만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이들은 세속적 방식을 통해 정신과 의사는 본질적으로 컴퓨터와 같은 종류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인간 치료사들은 정보처리기이며, 단기적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일련의 판단 규칙을 지닌 의사 결정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인간을 흉내 내면서 엘리자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컴퓨터를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컴퓨터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게 여겨질 만큼 새로운 수준으로 인간의 시각을 제공하는 건 무엇 때문인가? 와이젠바움은 저서에서 그 답을 제시했다. 그는 컴퓨터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기계를 자연과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켰던 과거 인류의 지적 기술, 즉 지도와 시계와 같은 도구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기술들은 인간이 자신의 세상을 건설해내는데 사용한 바로 그 물건들의 일부가 됐다. 일단 채택되면 이들은 사회를 엄청난 혼란과 완벽한 혼돈 속으로 밀어 넣지 않는 한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그는 지적기술은 ”일단 구조와 완벽하게 통합되고 다양한 주요 하부구조와 얽히게 되면 구조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며, 이 때문에 전체 구조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한 제거될 수 없다“고 적었다.


와이제바움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는, 우리가 지닌 것 중 가장 기계화하기 어려운 바로 그것이라고 믿게 됐다. 우리가 삶의 많은 부분을 모니터 상에서 깜박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징을 통해 경험하면서 우리 앞에 당면한 큰 위협은 우리가 우리를 기계와 차별화시키는 바로 그 특성들을 희생시키면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어 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와이제바움은 이 운명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자기인식 그리고 우리의 정신 활동과 지적인 추구, 특히 ”지혜를 요구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는 걸 거부할 용기“라고 적었다.


도구가 가져오는 가능성과 한계
모든 도구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한계도 가져다준다. 더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는 스스로 그 형태와 기능을 따르게 된다. 기술은 신체의 어떤 부분의 마비를 초래한다.


가장 인간적인 것들과 맞바꾼 기술
기술의 힘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는 소외다. 이 비용은 지적기술에 있어서는 특히 클 수 있다. 사고의 도구들은 확장되고 그 대가로 우리의 자연스런 능력들 중 가장 사적이고 인간적인 것들, 즉 이성, 인식, 기억, 감정 등은 마비된다. 기계식 시계는 이 기기가 가져온 모든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간의 자연스런 흐름을 앗아갔다. 언제 먹고, 일하고, 자고, 일어날지를 정하는 데 있어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귀 기울이기보다 시계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지도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장점만 지닌 듯 보이는 도구 역시 마비 효과를 지니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길찾기 능력은 지도 제작자의 기술로 인해 엄청나게 확장됐다. 하지만 지형을 이해하고 머릿속에 주변에 대한 상세한 지도를 만들어내던 타고난 능력은 약해졌다.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보다 지도에 의존할 때 그들은 공간 표현에 필요한 해마의 감소를 경험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평가할 땐 얻는 것뿐만 아니라 잃는 것에도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영광이 우리의 핵심 자아를 마비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내부적인 감시의 눈이 멀도록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신경 시스템과 컴퓨터, 닮아서 더 위험하다
보편적인 미디어이자 우리의 감각, 인식 그리고 기억에 대한 압도적으로 다재다능한 연장으로서의 컴퓨터는 특히 강력한 뉴런 확장기로서 기능한다. 전자미디어는 신경체계를 변형시키는데 있어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그 이유는 양쪽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둘 다 기본적으로 호환이 가능하며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는 우리 뇌속에 강력한 사회적 본능을 불어 넣었는데, 이는 ”우리 주변 사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추론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다.


정보 처리 기기를 통해 도이지가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진입하려는 우리의 열의와 열망은 정보의 매개로서 디지털 컴퓨터 특성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적응된 뇌가 지닌 특성에 따른 것이다. 인공두뇌와 같은 생각과 기계간 경계의 혼돈이 우리로 하여금 특정 인지적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이는 또한 우리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고가 더 용이하게 녹아드는 더 큰 시스템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 뇌가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과부하에 걸리면 우리의 학습능력은 심각한 수준으로 저하된다. 정보가 많을수록 지식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컴퓨터, 스키마 형성을 위한 뇌의 능력을 감소시키다
성과와 학습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는 것은 소프트웨어 디자인 차이다.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피실험자들은 끊임없이 ”더 높은 집중력과 더 많은 간단하고 경제적인 해결책, 더 나은 전략 그리고 더 나은 지식의 획득“을 보였다.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명백한 길잡이에 더 의존할수록 과제에 덜 몰입하고 덜 배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발견은 ”우리가 문제 해결과 또 다른 지적인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면서 훗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식구조, 즉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한 뇌의 능력을 감퇴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소프트웨어가 더 똑똑해질수록 사용자는 더 멍청해진다는 말로 핵심을 한 논객은 꼬집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의 행동을 각각의 단계가 웹페이지의 논리에 따라 암호화되어 있는 생각없는 의식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우리의 지식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기계의 작동신호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기술의 광란을 맞이하다
인간의 뇌가 물리적인 고통의 묘사에 빨리 반응하지만 (누군가 부상당한 것을 목격했을 때 당신의 뇌에 자리 잡은 원초적 고통은 거의 즉각적으로 활성화된다) 심리적인 고통에 공감하는 더욱 세심한 정신적 과정은 천천히 활성화됨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뇌가 “신체의 직접적인 연관을 뛰어 넘어 심리학적 도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자들은 이 실험이 우리가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메리 헬렌 이모디노 양은 “특정 사고에 있어서,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심리적 상황에 대한 도덕적인 결정에 있어 우리는 적절한 시간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우리의 도덕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성급한 결론은 아닐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요소들
기술의 유혹은 거부하기 어렵고, 우리가 사는 인스턴트 정보 시대에서 속도와 효율성이 주는 이득은 그야말로 꼭 필요한 가치라는 생각에 그에 대한 열망은 논쟁의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인간이 미래의 컴퓨터 과학자들과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우리의 명령 체계를 작성하는 일에 순응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중략- 우리가 의문의 여지없이 인간적인 요소들은 더 이상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특히 자녀들을 양육하며 그들의 생각을 키워줄 때 얼마나 슬프겠는가?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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