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프롤로그
조든 피터슨
나는 <의미의 지도>에서, 과거의 위대한 신화와 종교 이야기, 특히 과거 구비 문학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은 사건 서술보다 도덕적인 내용 전달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했다.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주제보다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뤘다. 우리 조상은 세계를 사물들이 배열된 공간이 아니라 드라마 무대로 보았다. 난 그 책에서 드라마적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물질적인 게 아니라 혼돈과 질서라고 생각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질서가 잡힌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므로 예측할 수 있고 협력적이다. 질서는 사회 구조가 잘 갖춰진 세계고, 이미 탐험이 끝난 구역이자 친숙한 공간이다. 질서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그려진다. 질서는 현명한 왕과 폭군이 영원히 공존하는 상태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구조적인 면과 억압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혼돈(카오스)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혼돈은 무척 사소한 형태로 나타난다. 모임에서 농담을 했는데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경우. 직장에서 해고 당했거나 연인에게 배신을 당한 경우에 혼돈이 재앙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남성으로 상징되는 질서와 달리, 혼돈은 주로 여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표현된다. 혼돈은 흔하고 익숙한 것들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새롭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혼돈은 창조인 동시에 파괴이며, 새로운 것의 근원이자 죽은 것의 종착역이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문화 달리, 자연에서는 죽음이 곧 탄생을 의미한다.
도교의 상징에 비유하면, 혼돈과 질서는 음과 양이며, 머리와 꼬리가 맞물린 두 마리의 뱀이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모든 걸 상실한 듯한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재앙과 혼돈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도교는 안정과 변화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계를 걷는다는 건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이고, 신성한 중도中道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삶의 길을 걷는 게 행복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이 파괴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려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념체계를 공유할때 사람들은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신 념체계가 단순히 믿음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상대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상대에게 뭐를 기대해야 하는지 알기에 사이좋게 협력할 수 있고, 심지어 경쟁마저 평화롭게 할 수 있다.
공유된 신념체계는 모든 사람을 단순한 잣대로 판단하게 만든다. 또한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길들이기에 세계도 단순해진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런 체계를 지켜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체계가 위협 받으면 중대한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념을 지키려고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이 진짜 싸우는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연인 사이의 배신이라는 행위는 강력한 힘으로 평화를 파괴한다. 배신당한 사람은 자신과 배신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죄책감과 불안감, 분노와 두려움 같은 끔직한 감정에 사로 잡힌다. 갈등은 피할 수 없고,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유된 신념 체계-- 동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위와 기대의 공유체계--는 이런 강력한 감정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혼돈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과 다툼에서 우릴 구해 줄 뭔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신념 체계, 즉 문화 체계를 공유하면 구성원들이 안정적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다. 문화 체계는 다시 말해 가치 체계다. 수많은 가치 중에는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것들이 있다. 한마디로 가치에도 등급이 있다는 뜻이다. 가치체계가 없다면 누구도 적절히 행동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인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행동과 인식은 목표를 바탕으로 이뤄지는데, 타당한 목표는 필연적으로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가치 체계가 없다면 목표를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 행동과 인식이 무의미해진다.
목표는 주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돼 있다. 우린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나아지고 있다는 개념에는 어떤 가치가 포함돼 있다. 삶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나약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자, 그 사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은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재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줄 뭔가가 있어야 한다. 즉, 심원한 가치 체계에 내재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돼 희망을 잃고 절망적인 허무주의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가치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하지만 가치 체계들은 자주 충돌한다. 따라서 우린 영원히 진퇴양난에 놓인다. 내가 속한 집단의 믿음 체계가 사라지면 삶은 혼란스럽고 비참해서 견딜 수 없는 게 된다. 집단의 믿음 체계는 필연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충돌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서구인들은 전통과 종교를 중심에 둔 문화에서 언제부터인가 점점 멀어졌다. 심지어 국가 문화 중심 에서도 멀어졌다. 그 덕분에 집단 사이의 갈등 위험은 조금 줄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무의미의 포로가 될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건 결코 발전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갈등이란 끔찍한 딜레마에서 세상이 해방될 수 있을까? 그와 동시에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해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내가 찾은 답은 '개인의 향상과 발전', 그리고 '누구나 자발적으로 존재의 부담을 짊어지고 영웅의 길을 택하려는 의지'였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사회와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우린 모두 진실을 말해야 하고, 황폐해지고 망가진 걸 고쳐야 하며, 낡고 고루한 걸 새롭게 바꿔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세상을 망가뜨리고 더럽히는 고통을 줄일 수 있고, 또 그렇게 줄여 가야만 한다.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벌어질 일은 훨씬 더 끔찍하다. 권위주의적 신념이 가져올 공포, 붕괴된 국가가 일으킬 혼돈, 걷잡을 수 없는 자연계의 재앙, 삶의 목적이 없는 개인들의 존재론적 불안과 나약함 등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우리에겐 법칙과 기준, 가치가 필요하다. 우린 마치 짐을 나르는 동물과 같다. 우리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짐을 짊어져야 한다. 우리에겐 일상과 전통도 필요하다. 그런 게 질서다. 하지만 질서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 혼돈이 우릴 덮치고, 그 결과 우리가 혼돈에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좁고 곧은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책에 언급된 12가지 법칙은 ‘그곳’에 있기 위한 지침이다. ‘그곳’은 혼돈과 질서의 경계선 위에 있다. 그곳은 우리가 안정을 누리면서도 얼마든지 탐험과 변화, 수정과 협력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의 삶, 그리고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정당화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올바르게 산다면,
부담스런 자의식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원망으로 시작해서 시샘과 복수심과 파괴적 욕망을 차레로 자극하는 피해 의식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불완전하고 무지한 존재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체주의적 이념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지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피할 수 있다.
진정한 ‘존재’로서 영웅적 행위를 갈망하고 삶이 부과하는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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